8. 허정(虛靜), 비움의 고요

우리의 마음은 쉴 새 없이 세상의 소리로 가득 찹니다. 끊임없는 걱정과 욕망, 수많은 선입견과 판단들이 마음의 방을 어지럽혀, 우리는 정작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고 내면의 평화를 잃어버리곤 합니다. 이러한 소란함 속에서, 동양의 고전 노자의 『도덕경』은 '허정(虛靜)'이라는 깊고 고요한 지혜의 길을 제시합니다.

 

마음의 빈 그릇

'허정(虛靜)'마음을 '비우고(虛)' '고요하게 하는(靜)' 이상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노자는 "비움에 이르기를 극진히 하고, 고요함을 지키기를 돈독히 하라"라고 권합니다. 마음속의 온갖 잡념과 욕망, 선입견이라는 먼지를 깨끗이 비워낼 때, 비로소 마음은 고요한 호수처럼 평온해집니다. 그리고 그 고요함 속에서 만물의 근원인 도(道)와 하나가 되고 사물의 본모습을 있는 그대로 통찰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마치 그릇이나 방의 '비어 있음'이 그것을 쓸모 있게 만들듯이, 마음의 비움은 오히려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활용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이 된다는 역설적인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비움의 실천

'허정'의 가르침을 삶 속으로 가져온다는 것은, 나의 굳어진 생각과 편견을 내려놓고 세상을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입니다. 내면의 소란스러운 욕망을 잠재우고, 고요함 속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성찰하는 시간입니다. 이러한 비움과 고요의 실천은 우리를 불필요한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고, 더욱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으로 이끌어 줄 수 있습니다.

 

비어 있어 들리는 소리

이 깊고 오묘한 '마음 비움'의 지혜를 묵상할 때, 나는 내 신앙의 여정에서 마주했던 또 다른 '비움'을 떠올립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심령이 가난한 자"의 마음입니다. 나의 지혜와 의로움, 나의 계획과 노력을 모두 내려놓은 뒤 찾아 오는 영적 갈망은, 오히려 나의 심령을 가난하게 하며, 나의 부족함을 온전히 인정하는 마음의 상태로 이끕니다.

나의 마음 비움이 그저 텅 빈 고요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어떤 소리를 더 선명하게 듣기 위한 준비임을 깨닫습니다. 세상의 소음과 내 안의 분주한 자아의 목소리가 잠잠해진 바로 그 고요한 빈자리에, 나를 부르시는 세미한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나의 편견과 욕심이 비워진 깨끗한 마음의 창을 통해, 비로소 그분의 빛이 스며들어와 나의 길을 비춥니다.

 

빈 마음, 그분을 향한 가장 넓은 문

결국, 나의 '허정'은 텅 빈 공허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그 어떤 세상의 것으로도 채울 수 없었던 가장 큰 충만, 즉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로 채워지는 은혜의 시작임을 고백합니다. 나의 침묵과 고요는 그분과의 더 깊은 인격적인 만남을 위한 거룩한 공간이 됩니다. 나의 비움은 '나'로 가득했던 마음의 방을 깨끗이 치우고, 그분을 나의 주인으로 온전히 모셔 들이는 가장 겸손한 행위입니다. 오늘, 나는 다시 마음속 먼지를 털어내고 고요히 그분 앞에 섭니다. 나의 이 가난하고 빈 마음이야말로, 그분의 무한한 사랑과 은혜를 담을 수 있는 가장 넓은 그릇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