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고(苦) – 삶의 실존적 물음, 고통의 의미와 그 너머

고(苦)와 죄(罪): 고통의 두 얼굴, 다른 길의 시작

어쩌면 삶은 잔잔한 수면 아래 늘 일렁이는 그림자처럼, 크고 작은 고(苦)의 물결을 품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기쁨 속 불안, 사랑만큼 깊은 상실의 두려움처럼, 고통은 예외가 아닌 존재의 한 부분인 듯 다가옵니다. 불교 사성제(四聖諦)의 첫 음성은 바로 이 ‘삶은 근원적으로 고통이다’라는 깊은 응시에서 시작됩니다. 여기서 고(苦)란 표면적 아픔을 넘어, 생로병사의 강물, 사랑하는 자와의 이별의 슬픔, 미운자를 대면하는 괴로움, 원하나 얻지 못함의 상실감, 그리고 변화무쌍한 몸과 마음 자체의 불안까지 품습니다. 그 파도 밑에는,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하고(無常) ‘나’랄 것 없는 공함(無我)의 진실이 흐릅니다. 이 영원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우리의 기대와 집착이, 모든 경험을 불만족스럽고 아린 고통으로 물들인다고 불교는 가르칩니다.

 

실존의 진실 앞에 서다

불교는 이 삶에 드리운 고통(苦)의 그늘을 외면하거나 섣불리 위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아픔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 고통을 인간 실존의 정직한 진실로 마주합니다. 기쁨 뒤에 상실이, 만남 뒤에 이별이 있듯, 경험하는 모든 것은 변하고 사라지기에 완전한 만족을 줄 수 없다는 냉철한 관찰입니다. 이는 비관이 아닌, 환상에서 깨어나 실상을 바로 보려는 용기 있는 시선. 고통을 피해야 할 문제가 아닌, 깊이 이해하고 그 본질을 꿰뚫어 봄으로써 비로소 자유에 이르는 길을 찾기 위함입니다. 이처럼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함은, 더 깊은 평화와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불교 여정의 첫 디딤돌입니다.

 

참으로 불교의 지혜는 우리로 하여금 삶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그 의미를 깊이 묻도록 이끕니다. 그러나 이 고통(苦)의 실상을 안다고 하면서도, 우리는 자주 그 고통을 회피하거나 섣불리 잊으려 애씁니다. 매 순간 변하고 사라지는 것들에 여전히 마음을 붙잡아 매는 집착에 빠지고, 그로 인해 스스로 괴로움의 불꽃을 지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정직한 응시만이 우리를 진정한 평화로 이끄는 첫걸음임을 알기에, 오늘도 마음의 눈을 들어 나의 고통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고통의 뿌리를 죄(罪)로 보는 시선

불교가 존재의 본질적 조건에서 고통(苦)의 원인을 찾는다면, 기독교 신앙은 그보다 더 깊은 곳, 보이지 않는 관계의 깨어짐에서 고통의 씨앗을 발견합니다. 기독교는 인간의 근원적 고통과 소외, 죽음의 그림자를 죄(罪)라는 한 단어에 담습니다. 죄(罪)는 단순한 윤리적 잘못을 넘어, 생명과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 뿌리 뽑힌 나무 같은 영적 고립입니다. 본래 하나님의 숨결로 지음 받아 그분과 사랑의 대화를 나누도록 초대된 인간이, 그 관계를 저버림으로써 영적인 어둠과 공허 속에 놓였고, 그 결과 온갖 고통이 삶의 불청객처럼 찾아들었다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태양을 등진 땅이 차갑고 어두워지듯,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마음은 방향을 잃고 내면의 질서 또한 무너지며 고통을 경험합니다.

 

고통을 통해 열린 구원, 회복의 새벽

하나님께서는 죄(罪)로 고통받는 인간의 신음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가장 깊은 고통의 자리, 죽음의 골짜기로 친히 내려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모든 아픔과 죄의 무게를 짊어지시고 십자가라는 극한의 고통을 통과하셨습니다. 스스로 ‘고통받는 자’가 되심으로써, 고통 속 우리를 가장 깊은 곳에서 만나시고 품어 안으셨습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고통이 하나님의 부재가 아닌, 오히려 그 한복판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가장 뜨거운 사랑과 구원의 의지가 드러나는 역설의 자리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과 고통의 사슬을 끊고, 모든 믿는 이에게 죄 용서와 하나님과의 화해, 영원한 생명의 희망을 선물합니다. 이제 고통은 절망의 나락이 아닌, 그 너머에서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치유와 회복, 새로운 시작을 향한 ‘틈’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십자가의 사랑과 부활의 소망 앞에서, 우리는 여전히 삶의 고통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혹여 죄(罪)의 무게와 그로 인한 아픔을 너무 가벼이 여기거나,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신 구원의 능력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여전히 나 자신의 힘으로 고통을 해결하려 발버둥 치고 있지는 않은지도 살펴야 합니다. 고통이 하나님의 부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의 가장 깊은 임재와 사랑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이 놀라운 복음 앞에서, 우리의 믿음이 더욱 깊어지고 삶이 변화되는 은혜를 간절히 구하게 됩니다.

 

내 안의 고통, 그 부르심 앞에

마음속 깊이 남몰래 묻어둔 아픔, 차마 꺼내지 못한 고통의 조각들이 있는지 살펴봅니다. 피하려 할수록 그림자는 짙어지고, 외면할수록 무거운 짐으로 짓누르는 그 가장 아픈 자리야말로, 가장 진실하게 자신을 만나고, 보이지 않는 더 큰 사랑의 손길을 느끼는 기회가 숨겨져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불교가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깨달음의 길을 찾듯, 그리스도인에게도 고통은 때로 더욱 깊은 믿음과 소망으로 이끄는 연단의 과정입니다. 오늘, 내 안의 가장 깊은 고통과 가만히 마주 앉아, 그 아픔 속에 담긴 의미를 묻고, 그곳에서 조용히 나를 부르시는 음성에 귀 기울여 봅니다. 절망의 잿더미 속에서도 한 송이 꽃을 피워내시는 그분의 손길이, 바로 나의 이 고통을 통해 새로운 생명의 이야기를 시작하고 계신다는 믿음 때문입니다.